단상과 해설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기후정의법) 국회 본회의 통과 소회.

정의로운 녹색 전환 2021. 9. 3. 11:42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기후정의법) 국회 본회의 통과 소회.(2021.9.2)

 

1.

금주는 휴가를 냈었다. 한동안 몸이 좋지 않아 중요한 원고 몇 개는 아예 펑크를 내버렸지만, 몇몇 일정들이 있어 일정을 멈추고 쉴 수 없는 상황이 있었다. 국회 법안 통과 일정이 휴가기간이긴 했지만, 이미 발표한 것과 비슷한 내용의 성명, 논평을 날짜와 주어만 바꿔 또 내는 것만큼 허망한 것이 없어 원내에서 잘 대응해주리라 믿고 휴가를 떠났다.

 

2.

작년 5월, 그린뉴딜 특별법 공청회 준비부터 지금까지 대략 1년 3개월을 이 법에 붙어 있었다. 총선 경선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았던 시기이다. 개인적으로 몸과 마음이 어수선했고, 당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린뉴딜 특별법은 정의당의 주요 총선 공약이기도 했고, 이후 기후위기 대응에 핵심 법안이기에 밑바닥에서 하나씩 법안을 준비했다

 

누군가는 국회 법제실을 통해 법안을 만들어보라고도 했지만, 제정법 특히 기후위기에 대한 개념도 애매한 상황에서 법제실에 법안을 맡기면 뻔한 내용이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이런 작업을 해 본 사람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결국 혼자 내용을 다 채웠다.

 

법조문에 들어갈 기후정의,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정의 같은 것이 있을 리 만무하고,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 같은 것은 외국 것을 그대로 번역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의로운 전환 특구 같은 것은 기존 특구의 개념을 가져다 온 것이고, 외국에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던 농민이나 중소상공인 등을 정의로운 전환의 주체로 호명하는 과정 등을 추가했다.

 

3.

5월에 완성된 법안을 8월에 제출할 때까지 실무적인 문제로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더불어민주당의 법안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 당정협의 진행 내용도 간간히 들렸다. 결국 가을이 되어서야 법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기존 '저탄소녹색성장법'을 어찌할 것인가라는 문제에서 당론으로 저탄소녹색성장법 폐지를 기본으로 법안의 방향을 잡았다.

나도 그린뉴딜특별법을 만들면서 저탄소녹색성장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이 옳다고 봤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그리 간단한 과정이 아니었다. 법안을 만드는 작업이야 가능하겠지만, 법안 논의 과정에서 국민의힘과의 엄청난 논쟁을 거쳐야 한다. 2020년 5월, 기후위기의 문제의식을 당장 담은 법안을 제출하기에는 너무 갈 길이 멀었다. 그래서 결국 일단 '그린뉴딜'에만 국한된 법안을 먼저 준비하고, 이후 저탄소녹색성장법 개정을 포함한 내용을 담는 2단계 계획을 준비했다.

 

그 사이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가을, 저탄소녹색성장법 폐지를 전제로 한 법안을 제출했다. 정의당도 같은 내용을 준비해야 할 타이밍이었지만, 당시 새 당대표가 선출되고 나는 당직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의원실들과의 관계는 예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새로운 법안을 가다듬는 것보다 국회의원 모임 활동 지원이나 석탄 비정규직 설문조사 작업 등 당 외각에서 할 수 있는 작업에 집중했다.

 

4.

그 사이 더불어민주당은 진도를 많이 나갔다. 법안의 완결성은 높아졌고, 타법 개정사항까지 포함한 '패키지 법안'의 형태로 구성되었다.

 

기후위기 관련 현안이 그렇듯 몇 달 사이 논의 진도는 너무나 빠르게 흘렀다. '기후정의법' 작업을 다시 진행한 것은 순전히 제출한 지 1년이 다되어 가는 '그린뉴딜 특별법'으로 환노위 법안 심의를 하기는 민망했기 때문이다.

 

당대표 사퇴 등으로 당내 상황이 어려워져 있는 상황에서 기후위기 문제라도 제대로 논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2021년 4월, 당직에 복귀하면서 당내 역할 문제도 정리되었기에 보다 마음 편하게 작업에 임했다.

 

이때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부터 '미리 말씀하시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직 국회 상임위 논의는 단 1번도 진행되지 않았지만, 이미 당정협의가 다 끝난 상황이라 더 바꾸기 힘들다는 얘기였다. 거대 여당과 정부의 협의 내용이 법안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국민의 힘은 사실상 법안을 내지 않은 상황이었다. 실제 당정협의 끝난 내용이 상임위 논의에서 뒤집였던 것이 어디 한두번인가? 하지만 많은 이들의 태도는 이미 상임위 통과까지 다 끝난 것 같았다.

 

2월 통과설, 6월 통과설 같은 언제 법안이 통과될 것이다라는 이야기도 수차례 나왔다. 하지만 결국 첫 논의는 5월말에야 시작되었고, 그나마 법안 설명 수준에 그쳤다. 결국 법안 논의는 예상한대로 흘러갔다. '녹색성장'이란 개념이 추가되는 등 내용의 대폭적인 변화도 그 때부터 나왔다.

 

생각해보면, 국회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공간이 아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국회는 역시 모든 걸 다할 수 있기도 하지만, 모든 걸 다 할 수 없는 공간이기도 하다.

 

5.

올해 4월, '기후정의법안'을 만들면서 핵심 쟁점으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기후정의/정의로운 전환 원칙, 위원회 구성 등을 잡았다. 작년 정부가 제출했던 2030년 목표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았고, 독일 등 유럽 사례에서 2050년뿐만 아니라, 2030년 목표를 법률로 규정하고 있는 것들을 참고했다. (독일은 2030년 목표만 있는게 아니라, 매년 부문별 감축 목표까지 규정되어 있다.)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 원칙은 그 사이 시민사회의 논의를 대표 흡수했고, 탄소중립위원회 구성은 '이벤트형 위원회 구성'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그린뉴딜 특별법은 거의 100% 나혼자만의 작업이었지만, 기후정의법은 1년 사이 진척된 사회적 논의를 반영한 결과였다.

 

법안, 특히 제정법처럼 다양한 내용이 담긴 법안을 논의할 때는 다양한 쟁점을 모두 부각시키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핵심'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사회적 논의과정 방향이 완전히 달라진다. 20개, 30개 요구 사항을 모두 달성하면 좋겠으나, 20-30개 현안 중 90%가 달성되더라도 핵심적인 1-2개를 놓치면 엉뚱한 법이 만들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애초 더불어민주당 법안의 핵심 포인트는 2030년이 아니라, 2050년 탄소중립이었다. 2030년 목표는 현행처럼 대통령령으로 상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논의가 그렇게 흘러가면 정부 내부 논의로 모든 것이 집중되어 대충 끝나버리게 된다. 사회적으로 2050년 탄소중립을 당연한 목표이고, 당장 온실가스를 줄이기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위해서도 2030년 목표가 중요했다.

 

그래서 2030년 목표를 쟁점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집중했다. 무려 7개나 되는 법안이 병합심의되다보니, 언론에서도 법안명을 헷깔려하는 상황에서 법안명이 뭔지는 몰라도 연말까지 다시 제출해야할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국회차원에서 최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은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2018년 대비 35% 이상' 너무나 아쉬운 표현이지만 이를 둘러싼 지난한 논쟁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는 '2030년 목표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라는 문구가 들어갔을 것이다.

 

6.

법안을 둘러싼 싸움은 생각보다 종합적인 작업이다.

 

정의당처럼 소수정당이 혼자 모든 것을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책과 법제 실무에 능한 인력도 부족하다. 소수 정당은 언론의 주목도 역시 떨어진다. 이런 가운데에서 '온실가스 50% 감축이면 몇 억톤이 줄어드는 건가요?', '2010년, 2017년, 2018년 대비가 무슨 차이인가요?' 같은 기본적인 질문 몇 개 쳐내다 보면 하루가 다가는게 보통이다.

 

일반 시민이나 언론은 물론이고 당원들이나 시민단체도 생소한 내용을 어떻게 쉽게 풀어낼 것인가라는 점은 여전히 숙제이다. 수년간 운동의 성과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확대되고 있으나, 이를 극복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드는 사회운동으로 이를 연결시키는 것에는 아직 문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 안팎에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준 분들께 감사드린다. 매번 부족하고 심신의 허약함(!)으로 신세 많이지고 있는 심상정, 강은미 의원님과 의원실 보좌진들, 당 정책위와 연구소를 비롯한 당직자 여러분들, 매번 급하게 기자회견하고 간담회해도 새벽같이 달려와주신 기후위기비상행동과 녹색당, 미래당 분들, 분명히 데스크에서 '이게 뭔소리야?'라고 핀잔 들을 것 같은데도 기사 열심히 써주시는 기자분들, 지역에서 매번 피케팅으로 화답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성과가 너무나 미흡하고, 원안의 좋은 내용이 빠져 누더기 법안이 되어 버린 것은 너무나 안타깝지만,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쟁점화되지 않고 넘어가 버릴 듯한 내용을 하나씩 문제제기해가는 일은 계속되었으면 한다.

 

지금은 '정의로운 전환법'과 몇 개의 다른 법안을 다루고 있다. 어디서 쟁점을 잡아야할 지, 어떻게 논쟁구도를 만들지에 따라 또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국회 안과 밖이 어떻게 보조를 맞춰야 할지 과거보다 더 나아간 모델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탄소중립 녹색성장법에서 '녹색성장' 걷어내고 '정의로운 녹색 전환'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법을 만들 날을 기대해 본다.